신년 4강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딤후 3:1-4:8)

 

2014년 1월 12일 신년 3강

말씀을 전파하라

말 씀: 딤후 3:1~4:8(요절 4:2절)

요 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서 론

저희 대학로 교회에서 2014년 요절로 잡은 말씀은 디모데후서 4장 2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입니다.

디모데서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바울은 지금으로 말하면 선배 목회자이고 디모데는 후배 목회자로서 이제 데뷰하는 상황입니다. 바울은 선배 목사로서 마치 이제 갓 신학교를 졸업하고 개척교회 목사로 부임하는 디모데에게 편지를 통해 요모조모 목회자로서 지킬 일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목회자는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은 목회자의 몫만은 아닐 것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기쁨으로 그리고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1. 바울이 디모데를 돕는 방법.

서두에서 바울이 후배 목사 디모데를 돕고자 한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어떻게 사람을 돕는지 잘 배우기를 원합니다. 이것을 잘 배우면 양들을 잘 섬기고 좋은 동역자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1장 2절을 보면 바울은 디모데에게 ‘참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어떤 목사님이 후배에게 ‘내 아들아’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것을 잘 보지 못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참 아들’이라고 한 것을 보면서 저는 바울이 아버지로서 디모데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영적으로 어떤 관계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오늘 보는 디모데후서 3, 4장 말씀을 보면서 바울이 디모데를 사랑하되 진정 아버지로서 사랑한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자녀를 잘 성장하게 하는 최고의 방법은 부모가 모범을 보이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통로는 말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 구체적으로는 그 사람의 행동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0절에서 13절까지를 읽어 보겠습니다. ‘나의 교훈과 행실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사도 바울은 말로서가 아니라 행동으로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고난을 극복함을 보여주면서 아들인 디모데가 자신과 같이 살아 주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아버지가 된 것은 디모데의 인생에 선한 영향력을 끼쳐 성장하도록 도왔기 때문입니다.

추가로 4장 7절을 보겠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바울이 아비로서 어떻게 본을 보이는 삶을 살았는지 더욱 잘 보여줍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라고 하면서 디모데로 하여금 자신을 본받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전쟁터에 바로 투입된 신병은 쏟아지는 적의 총탄으로 인해 머리조차 내 놓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언제 비로소 적병을 보고 총을 쏘게 되는 줄 아십니까? 바로 옆에 있던 선배 전우가 싸우다가 쓰러질 때 비로소 적병을 보고 총을 쏘게 된다고 합니다. 그때 비로소 무서워지는 것이 없어진다는 것이지요. 디모데에게 있어서 바울을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에서 믿음으로 순교한 선배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요셉목자님께서 주일 메시지를 대신 써보라고 하셔서 이 말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메시지를 보면서 아무나 메시지를 쓰는 것이 아님을 깊이 느꼈습니다. 생명을 내어 놓는 삶이 없이 어떻게 타인에게 영향력 있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저의 메시지는 같이 공부해 보자는 정도의 메시지에 불과하다할 것입니다. 같이 성장하기를 원합니다.

사도바울은 온 생애를 통하여 예수님을 닮고자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실제적으로 닮고자 했습니다. 그의 성스러운 몸부림은 디모데에게 더할 수 없는 힘과 방향이 되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과 인내와 사랑과 복음에 대한 분명한 삶을 통해 디모데에게 더할 수 없이 좋은 스승이지 영적 아버지가 되어 주었습니다. 이것이 영적 아버지입니다.

저도 자식 키우는 아버지입니다. 그러나 좋은 아버지 닮고 싶은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저는 아들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배우는 사도 바울의 삶을 잘 배워야겠습니다. 저의 아들은 제 말이 아니라 저의 행실과 믿음 저의 마음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천보다 더 좋은 사랑은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말을 하더라도 그 말씀에 따른 실천이 없다면 아무런 영향력을 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여러 가지 것을 권면하면서 이론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교훈으로 삶도록 방향을 제시합니다.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제가 후배들과 제 아들에게 힘이 되어 주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앞장서고 제가 한발 한발 옮길 때마다 후배들을 생각하며 발을 떼기를 기도합니다.

영적 아버지가 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 아버지가 안 된다면 영적 자녀는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해산의 고통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사도 바울을 볼 때 예수님을 닮아 모범을 보이며 사랑으로 가르치는 것이 해산의 고통임을 알게 됩니다. 선배가 죽지 않으면 후배가 적진을 향해 돌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2. 경건의 능력을 가지라.

바울은 디모데에게 경고하기를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많은 사람들이 경건의 모양은 흉내 내고 있으나 그 가운데서 경건의 능력을 믿는 모습은 발견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경건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데 경건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국어사전을 보면 경건이란 ‘공경하며 삼가고 엄숙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오늘 보는 디모데후서의 경건이라는 부분의 영어번역을 보면 국어사전의 경건과는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영어번역본에서는 경건을 ‘Godliness’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godliness’라는 뜻은 ‘신의 계율에 순종함, 신앙심이 깊음, 독실함’으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어떤 차이가 느껴지십니까? 사도 바울이 말하는 ‘경건’이라함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꺼이 지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몸가짐이나 태도를 신중하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적인 의미에서의 경건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말하는 경건의 모양만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경건의 모양만 있다는 것은 남이 보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껍데기만 그렇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경건의 모양만가지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본질을 깨닫기 어려운것이 문제입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스스로 허물을 잘 보지 못하기에 경건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래와 같이 경건의 능력이 없다면 경건의 모양만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경건의 모양만 있는 것과 대조되는 ‘경건의 능력을 인정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경건함에 어떤 능력이 있다는 것일까요?

저는 2014년 이 경건의 능력에 대한 말씀을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허락하신 뜻이 분명히 있다고 믿습니다. 힘이 없이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힘이 없이는 아무런 영향력도 없을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경건함에 능력이 있다고 말합니다. 영어성경에는 분명히 ‘power'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경건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라면 사도바울은 하나님을 실제로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에 힘이 있다는 말일 것입니다. 어떤 힘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세상 풍파에 흔들림이 없습니다. 세상이 붙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기분이 붙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신실한 믿음이 그를 붙들어 주는 것이지요. 경건의 능력을 발휘하는 그런 사람 주위에는 그 사람을 존중하며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종교지도자들의 핍박이나 로마의 권위에 전혀 눌리지 아니하는 견고함이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사도바울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전혀 흔들리지 아니하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사랑과 인내로 사람들을 섬겼던 것입니다.

경건의 능력을 잘 보여주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3장 31절부터 33절까지를 읽어 보겠습니다.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겨자씨는 아주 작아 장차 무슨 대단한 것이 될까 생각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겨자씨 한 알이 땅에 심겨져 자라나면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깃들게 하는 능력을 보여 줍니다. 여기서 겨자씨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믿음인데 곧 그것이 경건입니다. 그 믿음은 능력이 있어 자라서 공중의 새들이 깃들이는 아름다운 결과를 가져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가 경건의 능력을 믿고 행하여 많은 성도들이 짓들이는 큰 나무가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경건은 모양이나 흉내가 아니라 진실로 겨자씨가 깨어나 새들이 깃들도록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이 경건입니다. 경건함에는 능력이 있어 세상풍파에 흔들이지 아니하고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분노하거나 실망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경건의 능력을 믿는 사람은 나의 겨자씨가 자라 결국 많은 사람들이 깃들이게 되리라는 것도 믿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깃들이게 되는 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실천하여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과 같이 되기를 원하지만 마음에 한계성을 느끼고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겨자씨 한 알만큼의 믿음만 있다면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해 주십니다. 우리에게 작은 믿음이라도 모두 가지고 있지요? 2014년 두려워 말고 우리가 겨자씨 같은 작은 믿음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깊이 받아들이고 지켜 행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깃들게 되어 결국 하늘나라로 인도하는 거룩한 능력을 발휘하게 될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능력 있는 자로 살기 위해 돈과 지식 권력을 찾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고 행함으로 능력 있는 자로 인정받는 다는 것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천국을 향한 길목에서 어떤 사람이 진실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까? 세상이 주는 유익은 세상욕심에 목말라 하는 자들만 가까이 하게 할 것입니다. 또한 마음이 경건함으로 채워져 있지 아니하면 바람의 날리는 겨와 같이 아무런 영향력이 없을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열정적으로 순종하는 자에게는 길 잃은 양이 안식을 찾아 깃들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신경써야 할 문제가 바로 경건의 능력을 갖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경건의 사람이 되기를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기 위해서는 1)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고 하였고 2)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다고 하였습니다(디모데전서 4장 7~8절 참조). 3)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악한 생각이 나며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게 된다(디모데전서 6장 3~5절 참조)라고 말하고 경건의 중요성을 깊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경건의 모양만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진실로 경건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할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지적처럼 어떤 이익을 취할 방도로 경건의 모양만 갖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익을 취할 방도나 혹은 보이고 싶은 생각으로 경건의 모양만 갖고 있다면 실제로 예수님과 같이 사랑하고 희생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또한 고난의 때가 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아니하고 자기 좋을 대로 하고 말 것입니다. 조금만 어려움이 닥쳐도 불평을 하고 타인을 공격합니다. 알곡이 아닌 겨같이 고난의 바람이 불면 이리저리 휘둘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경건의 능력을 가진 사람은 어떠합니까? 실제 그 내면이 예수님을 닮아 희생하고 사랑하고 인내하며 진리를 버리지 아니하며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모든 것을 견디어 내는 것입니다. 오기로 견디는 것이 아니라 밭에 좋은 보화를 발견하고 흐뭇해하며 즐겁게 이겨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경건의 모양만 있는 사람에게서 돌아서라고 하였습니다. 경건의 모양만 있는 사람이 절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는 우리도 깊이 새겨보아야 할 말씀입니다.

3.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씀을 전파하라’라는 부탁을 합니다. 그런데 단순한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라고 되어 있는데 사도 바울이 ‘엄히 명령한다’라는 말을 볼 때 말씀 전파에 대한 바울의 간절함이 묻어납니다.

디모데후서 4장 2~5절을 간추려 보겠습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바울이 왜 이렇게 간절히 말씀을 전파하라고 하는 것일까요? 바울은 1) 성경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2)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말씀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는데 첫째가 구원의 능력이며 둘째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도록 하는 능력입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사실은 사도 바울이 지적한 바와 같이 많은 사람들은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른다면 구원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유일한 구원자이십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창조주요 구원자로 영접하는 것은 생명을 얻는 일이지만 사람들은 육신의 생명에 갇혀 영원한 생명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을 모르면 창조주 하나님 구원자 하나님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는 무엇이 가치 있고 선한 것인지 확신할 수 없게 됩니다.

바울이 살던 그 때나 지금이나 말씀을 전파하지만 사람들이 잘 들어주지 아니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고 말합니다. 목회를 시작한 디모데에게는 당연한 말씀인데 저희에게는 좀 거리가 있는 말씀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다면 말씀을 전파하여 하나님을 증거 하는 것은 당연한 삶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죄인들을 구원하기를 원하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잘 들어주지 아니하여도 항상 말씀을 잘 전파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평소 경건의 능력을 믿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깊이 경외한다면 그 사람은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천국 복음을 잘 전파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의 반응과 무관하게 그리고 자신의 형편이 장애가 되지 않아 항상 말씀을 전파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보고 소감을 쓰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말씀에 따른 실천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을 배우고 소감을 쓰는 이유는 경건의 능력을 확신하고 말씀대로 행동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말씀 훈련을 통해 겨자씨 같은 믿음을 뿌려 잘 성장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겨자씨 나무에 새들이 깃들이듯이 양들이 깃들일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장소나 상대방은 한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캠퍼스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아니면 친구들과 만났을 때 항상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빛을 발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할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과 같이 한 생명을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면 분명 시간이 나고 말씀을 전할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것은 글을 읽어주는 것이 아니라 경건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말씀을 전파하되 네 직무를 다하라’라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직무는 바로 마음에서 행동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말씀 전파는 우리가 경건의 능력을 발휘할 때 가능할 것입니다. 양들에게 우리 교회가 푸른 초장이 되어야 하며 쉴만한 물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경건할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교훈을 받고 스스로 허물을 책망하며 바른 길을 모색하고 먼저 자신을 가르쳐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며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심는 방법 중 가장 좋은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전도는 우리가 방향만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동행하고 같이 걸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2014년 저희가 경건의 모양만 있는 것을 경계하며 경건의 능력을 확신하고 말씀대로 사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2014년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영접하고 사도바울과 같이 선한 싸움을 싸우고 경건한 신앙으로 경건의 능력을 통하여 양들이 깃드는 교회로 만들어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모양만 내면 양들이 깃들지 않지만 경건의 능력을 덧입으면 올해 많은 열매가 있을 것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