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20장 창립기념메시지 눈물의 훈계(힝20:17-21, 31)

 

2014년 1월 5일 대학로 창립 13주년 예배

눈물의 훈계

말씀 : 행20:17-21, 31

요절 :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31)

Happy New Year! Happy Birthday to Daehakro! 어제 밤 잠깐 잠이 들었다가 새벽 1시 쯤 깼는데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이불 속에서 과거 대학로를 개척하던 시절을 기억했습니다. 13년 전 오늘, 새벽 1시쯤에도 역시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그 때는 대학로 센터를 개척하여 먹자골목의 마네타운 5층으로 이사 온 첫 날이었습니다. 그날 밤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주위 건물에서 웅웅대는 보일러 기계음과 1층 CD가게에서 나오는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5층까지 들려와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거기다가 이사를 오긴 왔는데, 대학로 상가 한 복판에 6천만 원의 너무 싼 전세 집으로 왔기 때문에 사기 당한 것은 아닌지 근심이 되어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 때에 비해 지금은 탁상 시계 초침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한 곳에서 잠을 자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또 창경궁과 성대를 정원으로 둔 번뜻한 센터 건물이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지요?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가 어찌 이뿐이겠습니까? 너무 많아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지난 13년 동안 대학로를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또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고 복음 역사에 헌신하신 동역자들께도 감사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대학로를 개척한 이유는 결코 좋은 환경에 거하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대학로 개척의 첫 번째 목적은 말씀을 통한 제자 양성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에베소 교회의 말씀 역사를 본받고자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행19:20)는 말씀을 요절로 붙들고 개척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 우리를 통해서 성대를 비롯한 캠퍼스에 말씀이 힘차게 퍼져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새해에 우리는 새로운 마음으로 재도전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말씀이 힘이 있어 캠퍼스에 흥왕한 세력으로 퍼져나가기 원합니다. 이러한 소망을 바라보면서 에베소 교회 개척 역사를 섬긴 사도 바울을 배우고자 합니다. 과연 그가 에베소에서 어떤 마음과 방향을 가지고 개척 역사를 감당했을까요?

첫째, 바울은 겸손과 눈물로 섬겼습니다(18,19).

1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바울은 ‘모든 겸손과 눈물로써 섬겼다’고 고백합니다. 먼저 바울은 겸손했습니다. 그는 자기 혼자 잘 난 척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여기지 않았습니다(롬12:16). 또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영광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빌2:5-8). 바울은 비천한 자들, 별 볼 일 없는 자들에게 찾아가 그들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상대방의 형편을 깊이 이해하고 도왔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양들을 향해 고자세로 “어떻게 그럴 수 있어?”하고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을까?”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겸손하게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마음을 낮추고, 양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섬겼습니다.

바울의 겸손은 유대인의 간계로 시험을 당할 때에도 나타났습니다. 유대인들은 온갖 간교한 말과 행동으로 바울을 비방하고 괴롭혔습니다. 사람에게 모함을 당하면 얼마나 참기 힘듭니까? 특히 바울을 괴롭힌 유대인들은 바울이 자기 생명보다 귀히 여기던 동족이었습니다(롬9:3). 이처럼 사랑하는 자들에게 비난을 받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들과 다투며 감정적으로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억울하고 기분이 나빠서 하던 일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유대인들로부터 받은 많은 시험에도 불구하고 꾹 참았습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주님을 섬겼습니다. 이는 그에게 겸손한 종의 자세가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참기 힘든 어려움이 있었지만, 겸손한 종의 자세가 있으니까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섬겼습니다.

사도 바울은 겸손과 더불어 눈물이 있었습니다. 이 눈물은 성도들을 위한 사랑의 눈물이었습니다. 이는 성도들을 향해 바울의 마음이 진실했음을 보여줍니다. 바울의 목자의 심정이 눈물로 나타났습니다. 31절에 보면 그는 성도들 각 사람을 도울 때에 눈물로 훈계했습니다. 그 만큼 사도 바울은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가졌습니다. 에베소 교회 개척은 사도 바울의 겸손하고 진실한 마음, 긍휼한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겸손과 눈물의 사역이 계속 이어졌을 때 성도들의 마음은 바울의 진심과 통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사도 바울과 작별할 때 그 성도들은 바울을 붙들고서 엉엉 울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37).

여기서 우리는 목자의 겸손과 눈물이 양들을 변화시키고 성숙하게 하는 출발점임을 발견합니다. 양이 목자의 겸손한 마음과 진심을 알 때 목자를 신뢰하고 따릅니다. 그러므로 양들을 향한 목자의 마음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우리가 겸손과 눈물을 가진 목자가 될 수 있을까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매일매일 양을 위해 중보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목자는 무릎을 꿇기 때문에 겸손해집니다. 또 목자는 기도 속에서 양들을 이해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니까 겸손하게 됩니다. 또 양을 위해 기도하다보면 그 양을 생각하게 되고, 생각하다보면 관심을 깊이 가지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양에 대한 사랑이 더 깊어집니다. 그래서 양을 향해 기뻐 울기도 하고, 슬퍼 울기도 합니다. 어느 때에는 양들을 생각하면서 통곡하며 울기도 합니다. 또 양들로 인해 하염없는 눈물로 베갯잇을 적시기도 합니다. 식사기도를 하다가 양들 생각이 나서 눈물을 밥상에 떨어뜨리기도 합니다. 목자가 양들을 겸손하고 눈물로 대하지 못하는 이유는 양을 위해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요? 반면 기도 하는 목자는 양들을 겸손하게 대합니다. 새해에 우리가 바울과 같이 겸손과 눈물의 목자로 성숙하기 원합니다.

둘째, 바울은 회개와 믿음을 증언했습니다(20,21).

20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양들에게 유익한 것이면 개인적으로나 공중 앞에서나 기꺼이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는 집에서나 캠퍼스에서나 레스토랑에서나 카페에서나 극장에서나 어디서든지 말씀을 전했습니다. 만약 핸드폰 문자 메시지나 카카오톡, 스카이페, 페이스북이 있었다면 그것을 이용해서 말씀을 전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양들을 향한 바울의 겸손과 사랑은 말씀 전파로 연결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말씀이야말로 양들에게 가장 고귀한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양들의 모든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이 말씀을 전할 때 그 핵심 내용이 무엇입니까? 21절을 읽겠습니다.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21) 바울은 누구에게든지 먼저 하나님께 대한 회개를 가르쳤습니다. 회개는 ‘마음을 바꾸다’는 의미입니다. 즉 바울은 말씀을 전함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우리는 도덕적으로 선하며 인간성이 훌륭한 사람들을 보면 회개할 필요가 없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거기다가 선행을 베푸는 자들을 보면 ‘회개하라’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회개를 전하는 내가 이상하게 생각됩니다. 회개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 3:10) 또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롬 3:23)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모두 추하고 더러운 죄인입니다. 인간은 그 죄로 말미암아 심판 받아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죄를 깨닫고 돌이키는 회개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회개는 회개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회개는 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참된 회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반드시 연결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만이 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 죽으신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을 때 죄 사함이 있습니다. 영생의 축복이 있습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얻습니다. 또한 이 땅에서도 승리의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회개와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전해야 합니다. 회개와 믿음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연결되었습니다. 회개가 없는 믿음은 결코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단지 바리새인처럼 자기 의만 주장하게 됩니다. 반면 믿음이 없는 회개 역시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없이 맨날 회개만 하는 자는 죄의식에 시달리며 자기 불의에 빠지게 합니다. 그러므로 회개와 더불어 예수님을 믿음으로 온전히 죄 문제가 해결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들에게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선포하셨습니다(막 1:15).

따라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항상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초점을 맞추기 원합니다. 소감을 쓸 때도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항상 함께 하기 원합니다. 말씀을 일대일 혹은 그룹으로 공부할 때에도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 꼭 함께 해야 합니다. 회개와 믿음이 없는 말씀 공부는 지식적으로 끝납니다. 거기에는 마음에 변화와 성숙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우리는 새롭게 됩니다. 또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사도 베드로는 말씀합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2:38). 또 구약의 잠언도 말씀합니다.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신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나의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잠1:23).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회개할 때 하나님의 신, 성령을 부어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성령이 함께 할 때 우리는 모든 일에 형통합니다.

저는 지난 주 해외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몇몇 동역자들과 말씀 공부를 하려고 연락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반응이 부정적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저의 마음도 부정적이 되었습니다. 낙심이 되었습니다. 저는 사람을 바라보고 실망하던 마음을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태산을 바다에 던지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죽은 자도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을 믿고 의지했습니다. 그 때 제 마음에 새로운 힘과 용기와 희망이 생겼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어떤 어려운 환경에 처할 때 염려하고 낙심하는 마음을 회개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겠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주시는 능력과 사랑과 지혜를 덧입어 담대하게 도전할 수 있습니다.

셋째, 바울은 각 사람을 밤낮 훈계했습니다(31).

사도 바울은 사나운 이리떼들로부터 양들을 보호하기 위해 어떻게 했는지 고백합니다. 3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바울은 양들을 흉악한 세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항상 영적으로 긴장하여 양들을 지키고 쉬지 않고 각 사람을 일대일 말씀으로 훈계했습니다. 에베소 교회에서의 바울의 주된 사역은 설교나 부흥회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주 사역은 한 사람 한 사람을 붙들고 간곡하게 훈계한 사역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각 사람을 훈계함으로써 성도들을 이단이나 죄악 된 세력으로부터 보호했습니다. 더 나아가 사도 바울로부터 말씀을 가르치며 훈계를 함으로 제자들을 양성했습니다. 그리고 그 제자들의 영적 영향은 에베소뿐만 아니라 아시아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퍼졌고, 그들 모두가 주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행19:10). 이러한 현상은 개인적인 훈계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주는 지 보여줍니다.

여기서 우리는 훈계의 중요성을 좀 더 생각해봅니다. 왜 훈계가 중요할까요? 왜냐하면 훈계는 우리 각 사람의 마음을 회개시키고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훈계가 없이는 회개할 수 없습니다. 성경 잠언은 말씀합니다.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다.”(잠6:23b), 또한 “훈계를 지키는 자는 생명 길로 행한다”(잠10:17a)고 말씀합니다. 반면 “견책을 싫어하는 자는 죽을 것이니라”(잠15:10)고 말씀합니다. 디모데 후서 3,4장에도 보면 사도 바울은 성경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고, 온전한 사람으로 성숙하게 한다고 말하면서(딤후3:15-17),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도록 합니다(딤후4:2b). 이는 말씀의 훈계가 사람을 구원하고 성숙하게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의 훈계를 통해 점점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올해 개인적인 요절로 이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사실 저는 목자로서 다른 사람에 대해 훈계하지 않고, 오래 참는 편입니다. 이는 제가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삶으로부터 배운 교훈이기도 합니다. 어머니는 참기 힘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오래 참으신 분입니다. 제가 어머니와 함께 살다보니 오래 참는 것을 많이 배웠습니다. 물론 이러한 내면은 저의 목자 생활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들이 저를 보면 별로 부담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는 무슨 말을 해도 제가 참고 들어주니까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겠지요. 이처럼 목자로서 사랑으로 오래 참는 것은 중요한 덕목입니다. 오래 참지 않고 훈계만하면 이는 시끄러운 꽹과리 소리에 불과합니다. 속된 말로 해서 ‘옳은 개소리’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오래 참기만 하고 훈계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훈계하지 않고 방관만 하면 결코 회개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영적인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교회 공동체가 생명력을 잃어갑니다. 악한 세력에 미혹되고, 휘말려 들어갑니다. 훈계 없는 신앙은 비참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그러므로 제가 목자로서 가져야 할 자세는 오래 참는 사랑과 더불어 진리의 말씀으로 훈계하는 것입니다. 새해에 우리가 양들에 대해 눈물로 훈계를 하여서 양들을 악한 세력에서 보호하고,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야 하겠습니다.

양들을 훈계하기 위해서는 목자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목자는 먼저 각 양들에 대한 애정과 진심을 가져야 합니다. 즉 겸손과 눈물의 사랑이 요구됩니다. 그래야 훈계가 효과가 있습니다. 동시에 양들을 훈계로 적절하게 돕기 위해서는 성경 말씀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다양한 상황에 있는 양들에게 꼭 필요한 말씀을 주어 훈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훈계를 위해 말씀을 연구하고 영접해야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사도 바울이 에베소를 개척하면서 어떤 자세와 방향으로 섬겼는지 배웠습니다. 첫째, 바울은 겸손과 눈물로 섬겼습니다. 둘째, 바울은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증언했습니다. 셋째, 각 사람을 훈계했습니다. 이는 따로 분리되지 않고 연결된 내용입니다. 즉 겸손과 눈물이 있는 마음은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전하는 것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또한 회개를 위해서는 훈계가 반드시 요구됩니다. 그러므로 겸손과 눈물이 있는 훈계를 통해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심어야 하겠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에베소 교회와 같이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