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Seth)을 주신 하나님. 창세기 4:16~26(25). 이요셉 목자님.
찬송가. 흑암에 사는 백성들을 보라.

 

문명과 문화가 발전할 수록 점점 더 비신앙적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 위기현상은 이 시대 뿐만아니다. 죄악된 세상에서도 새로운 소망을 두신 하나님을 배우자.

첫째. 가인은 여호와를 떠나 놋땅에 거주하며 성을 쌓았다. 에녹을 낳고 이후 라멕을 낳았으며 라멕은 각분야의 재능있는 자녀들을 낳았다. 라멕만큼 자식농사를 잘 지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불행했다. 그는 잔인했고 내면은 불행했고 죄로인해 불안과 두려움에 살았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문명을 발전시켰지만 불안과 두려움, 죄가운데 살고 있다. 문명이 발전할 수록 하나님을 떠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떠난 가인의 후손들의 심각한 문제이다. 하나님을 먼저 붙들 것인가 직업, 학문, 문명을 먼저 붙들 것인가?
둘째. 셋을 주신 하나님.
셋은 생명역사의 새로운 씨이다. 셋은 에노스를 낳았을 때 사람들은 여호와를 부르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하나님이 사람들과 영적으로 호흡하게 되었고 생명력과 기쁨이 넘쳐났다. 이땅에 새로운 영적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다.
 가인의 가족처럼 하나님을 떠난 문명과 생명은 하나님의 구속역사에서 사라졌다.

하나님께서 셋을 주신 이유, 근거는 무엇인가?
 가인이 죽인 아벨을 대신하기 위함이다. 아벨의 믿음과 희생을 이어갈 셋을 두셨다.
 이땅의 구속역사도 그렇다. 우리 땅에온 순교자들, 믿음의 선배들, 예수그리스도께서 희생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복음역사는 믿음과 희생의 역사이다.
캠퍼스선교역사도 우리의 믿음과 희생의 역사를 보시고 아벨과 에노스와 같이 믿음을 계승할 순교적인 희생의 각오로 감당해야 할 것이다. 죄악된 세상에서도 구속역사를 감당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자.
샛을 통해서 구속역사를 이어나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소망을 바라보자. 나의 믿음과 희생을 드리는 종이 되자.